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디에프 상륙작전 (문단 편집) == 이후 이야기 == 작전자체는 큰 실패지만, 이런 종류의 군사작전은 실패 여부를 떠나서 뒷이야기도 꽤나 많다. 우선 발단 항목에 나온데로 영국은 이 작전이후 정치적으로 그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. 특히 유럽의 직접적인 상륙이 어려움을 깨달은 연합국은 비교적 약한 이탈리아군과 보급부족으로 허덕이는 아프리카군단으로 눈을 돌려 지중해와 아프리카전선에 집중하기 시작했고, 이는 [[횃불 작전]]과 [[몰타 항공전]]으로 이어진다. 결론적으로 이집트 방어 성공으로 영국은 전후에도 수에즈 운하를 보장받을 수 있었고, 프랑스처럼 승전국 말단이 아닌 대표로써 얄타회담과 UN창설 당시 당당하게 나올 수 있었다. 직접적 후속작전은 아니지만 실제 입안된 작전중에는 코만도를 상륙시켜서 파리의 광장에 불을 켜고 돌아오는 계획도 있었다 한다.... 코만도의 초기성과에 고무된 나머지 벌어진 망상인데, 디에프의 교훈으로 이런 망상은 사라졌다. 작전개시이전 "이 작전은 [[식은 죽 먹기]] (piece of cake, 케잌 한 조각)보다 쉬울 것"이라고 발언했던 로버츠 장군은 이후 매년 8월 19일 누군가에게서 케잌 한 조각을 받았다. 나중에 훨씬 더 큰 규모로 시행되었고, 연합군이 승리한 [[노르망디 상륙작전]] 덕분에 연합군이 완벽하게 패배한 [[무관심|디에프 상륙작전은 대중매체에서 완벽하게 묻혔다.]] 2차대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[[밀덕]]들조차 노르망디에 관심을 갖지, 디에프는 뒷전이다. 간혹 나오더라도 간단하게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넘어가거나 배경으로 잠시 언급하는 정도. 1980년대 [[로렌스 올리비에]]가 내레이션을 한 고전 다큐멘터리 World At War에서도 노르망디 상륙 전편 앞부분에 5초간 잠깐 설명 나왔다. 다만 이 작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캐나다의 경우는 1994년에 2부작 다큐드라마를 만들었다. 영화 [[타이타닉(영화)|타이타닉]]에서 수석 조선기사 토머스 앤드루스 역을 맡은 배우인 [[빅터 가버]][* 미드 [[앨리어스]]의 여주인공 아버지역으로도 유명.]가 마운트배튼 제독으로 나오는데, 결과적으로는 미국, 영국의 [[높으신 분]]들의 병크를 고발하는 내용. 동쪽 측면 전투를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했다. 레온 유리스의 나치 전범 재판소설 [[7호 법정]]에서 주인공인 작가 캐시디가 미국인 출신의 영국 공군으로 이 작전에 참가했다는 설정이다. 피탄된 기체를 영국본토로 간신히 불시착했지만 한쪽 눈을 잃게 된다. [[안네의 일기]]에서도 디에프 상륙작전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[[해방|큰 기대를 한 모양이다]]. 이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도 "디에프 상륙작전과는 다른 것 같아.... [[비극|그때처럼 되진]] 않을...."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. 태평양전선을 다룬 드라마 [[더 퍼시픽]]에서도 짤막하게 패배한 것으로 언급이 된다. [[맥아더]]가 [[인천 상륙작전]]을 주야장천 밀고 나갔을 때 참모진이 그걸 반대하는 예시로 든 것이 디에프 상륙작전이었다. 인천의 상륙조건도 마찬가지로 매우 나쁘긴 했지만 다행히도 북한군은 독일군이 아니었다. [[분류:1942년 전투]][[분류:제2차 세계 대전/상륙작전]][[분류:윈스턴 처칠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